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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생각을 멈추면 안 되는 이유 - 악의 평범성

보옥보옥 2020. 7. 12. 03:05

우리가 생각을 멈추면 안 되는 이유 -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

 나치 독일은 유럽 전역에 걸쳐 1200만명 유대인들 중 600만명을 학살했다. 이 유대인들 대부분은 포로 수용소로 끌려가 가스실 안에서 죽임을 당한다.

 

▲ 아돌프 아이히만의 나치 장교 당시의 모습과 재판 당시 모습

 아돌프 아이히만은 유대인을 유럽 각지에서 수용소로 이송하는 최고 책임자였다. 즉, 아이히만은 수많은 유대인을 학살하는 계획의 실무를 책임진 사람인데, 우리는 보통 이런 사람을 볼 때 사이코패스 혹은 미친 사람으로 떠올리기 쉽다 . 하지만 아이히만은 법은 한번도 어긴 적 없는 모범시민이었고, 개인적으로 매우 친절하고 선량한 사람이었으며, 가족에겐 자상한 아버지였고, 매사에 성실하고 능력도 인정받는 매우 평범한 사람이었다.

 

나치 독일이 항복한 뒤 미군에 체포된 아이히만은 가짜 이름을 사용해 포로수용소를 탈출하고, 1950년 아르헨티나로 도주했다. 하지만 10년 뒤, 1960년 아돌프 아이히만은 체포되었고, 1961년 15가지 범죄 혐의에 대한 공개 재판이 열리게 된다. 아이히만은 이 재판에서 자신은 모든 혐의에 대해서 죄가 없으며, 그 이유로 " 난 단 한 사람도 내 손으로 죽이지 않았으며, 죽이라고 명령한 적도 없었다. 난 시키는 것을 그대로 실천한 하나의 인간이며 관리였을 뿐이다." 라고 말했다. 재판관의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했느냐는 질문엔 "월급을 받으면서도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지 않으면 양심의 가책을 받았을 것이다" 로 답했다. 재판에는 6명의 정신과 의사들도 참석했는데, 6명 모두 아이히만은 지극히 정상일 뿐 아니라 바람직한 사람으로 평가했다.

 

#그렇다면_아이히만은_왜_유죄인가?

 이 재판에는 정치철학자인 한나 아렌트도 참석했다. 아렌트는 재판을 8개월동안 참관하면서 "악이란 뿔 달린 악마처럼 별스럽고 괴이한 존재가 아니라 사랑과 마찬가지로 언제나 우리 가운데 있다."로 시작되는 '악의 평범성'이란 개념을 내놓는다.

▲한나 아렌트 <1906. 10. 14 ~ 1975. 12. 4>

한나 아렌트는 아이히만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그는 아주 근면한 인간이다. 그리고 그런 근면성 자체는 결코 범죄가 아니다. 그러나 그가 명백히 유죄인 이유는 아무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제 와서 돌아보니, 나는 복종에 헌신하는 삶이 매우 안락한 삶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게 사는 방식은 사람이 생각할 필요를 최소화한다." -아돌프 아이히만

악의 평범성의 핵심은 '생각없음'에 있다. '악'이란 '무사유, 생각하지 않음' 이며, 그저 열심히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 '악'일 수 있다는 것이 아렌트의 입장이다.

 

여기서 말하는 무사유란 무능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자신이 행하고 있는 일의 의미를 모른채 사유 없이 성실한 사람은 성실한 악행자가 될 수 있다. 사유 없이는 다른 사람의 처지에서 생각 할 수 없고 독단에 빠질 수 있다. 이런 독단에 빠진 사람은 아이히만의 경우 처럼, 자신만의 신념체계에 부합한 행동을 하지 않을 때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비정상적인 양심을 가진다.

 

#우리가_생각을_멈추면_안되는_이유

만삭의 여성을 포함한 4명의 조선인 위안부와 병사의 사진

"생각하기를 멈출때, 우리 모두는 성실한, 그것도 매우 성실한 악행자가 될 수 있다."

내가 생각하는 한나 아렌트가 악의 평범성을 통해 말하고 싶은 바는 악을 행하는 사람의 모습이 평범하다가 아니라,

평범한 우리의 일상에서 묵과되고 간과되는 사유의 결여, 그리고 그것이 악일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복종하고 헌신하는 삶을 포기하고 생각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은 어렵고 고통스러운 세계로 나아가는 것이다. 아이히만이 말했듯이 복종하고 헌신하는 생각없는 삶은 편안하다. 하지만 생각하고 다른 사람의 아픔에 반응하는 삶은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우리는 어떤 상황속에서 내가 어떤 일을 하는지, 어떤 상황속에 있는지 스스로 인지하는 능력을 잃어버릴 수 있다. 그러나 어려운 상황속에서도 생각하는 것이 '평범악'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N번방 사건

 사실 내가 공대생임에도 철학과 인문학을 공부하고 글을 쓰는 연습을 하게 된 가장 큰 계기는 N번방 사건이다. 대규모 디지털 성범죄가 일어나게 된 배경,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했던 앱과 기술은 내가 앞으로 개발이나 공부를 할 때 어떤 방식으로 생각해야하는지에 대한 뚜렷한 해답을 주었다.

 

 앞으로 대부분의 글을 공학도의 관점에서 철학과 인문학을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써보려 한다. 또는 게임을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게임 내에서 생각해볼만한 주제를 떼어내어 이야기해보려 한다. 이렇게 써가는 글 들이 나 개인의 발전 뿐만 아니라 같이 보는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끝으로, 생각하는 삶을 위한 나의 다짐을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나온 구절로 마무리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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